Q.T
찬송: 주기도문
제목: 닦아내는 방법
본문: 에스겔16:35-52
여러분,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즐거운 하루로 잘 시작하셨나요? 오늘도 이렇게 기도하고 시작합시다.
- 하나님, 오늘도 예수님의 보혈로 저를 덮어주세요.
- 하나님, 제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세요.
- 하나님, 저의 생각과 행동을 인도해주세요.
여러분 세탁 즐겨하시나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요, 세탁을 하고난 옷을 보면 정리는 귀찮은데 기분은 좋습니다. 그런데, 그 중 세탁이 잘 안 된 옷들을 볼때가 있어요. 김칫국물과 같이 세탁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잖아요. 그러면 참 난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요즘은 유튜브 지식의 시대 아니겠습니까. 자칭 세탁의 왕이라고 불리는 분들의 제안들을 들어보기도 합니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되지는 않는데요, 그래도 어느정도 도움은 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내가 세탁하기 어려운 얼룩들을 위해 특별한 세제를 샀다고 해서 써봤는데요, 레몬으로 된 세제라나 신기하게도 뿌리니 빠지는 것도 있고, 세정력이 좋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래도 안빠지는 옷들은 어떻게 하죠? 일전에 딸 아이가 매니큐어를 가지고 장난을 하다가 땅에 떨구었는데요, 그 매니큐어가 그만 열려있었지 뭡니까. 그래서 그만 속에 든 용액이 사방으로 튀었던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제가 옷을 많이 사지도 않는데 사서 몇번 안입은 티셔츠에 뭍어버렸습니다. 어찌나 속상하던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매니큐어는 닦아내는 용액이 있지 않겠습니까? 닦아보았는데요, 그게 섬유 안쪽으로 스며들다 보니, 아세톤으로도 빠지지가 않더라고요. 결국 버리기는 아깝고, 대충 그냥 입고 다니기로 했죠.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결하게 해주시는 말씀의 장면을 보게 됩니다. 마치 세탁자가 더러워진 것을 세탁하시듯 그것을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하지만, 세탁을 당하는 옷감은 어렵기만 합니다. 말씀을 함께 나누어볼까요.
1. 하나님께서는 깨끗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상황과 경우에 맞는 행동, 그리고 옷차림은 무척 중요합니다. 자신의 신분에 맞는 품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에는 형형색색의 옷들을 참 좋아했습니다. 한번은 위아래를 빨간 옷으로 맞춰입고 교회를 가본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목사가 되니, 목사로써 갖추어야 할 행색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단순히 옷의 종류를 떠나서, 깨끗하고 말끔하게 다니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라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은 외형이죠. 그러나 이렇게 이해함이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이 됩니다. 본문 39절을 읽어볼까요?
[에스겔 16:39] 내가 또 너를 그들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네 누각을 헐며 네 높은 대를 부수며 네 의복을 벗기고 네 장식품을 빼앗고 네 몸을 벌거벗겨 버려 두며
주님께서 의복을 벗기십니다. 우리의 죄의 의복을 벗게 하십니다. 빨아야 하기 때문이죠.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당부하신 한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거룩함’ 아닙니까. 그러나 거룩함의 흰옷이라면, 얼룩덜룩 더러워진 옷으로는 주님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세탁으로 그 옷을 정케 하는 것을 하나님의 방법으로는 ‘징계’라고 부르게 됩니다. 41-42절을 또 읽어봅시다.
[에스겔 16:41-42]
41. 불로 네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지라 내가 너에게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네가 다시는 값을 주지 아니하리라
42. 그리한즉 나는 네게 대한 내 분노가 그치며 내 질투가 네게서 떠나고 마음이 평안하여 다시는 노하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 이와같은 징계의 세탁을 하시는 이유는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십니다. 그 더러운 습관을 씻어내기 위함이십니다. 아픔은 깊이 각인되는 장기 기억능력을 발동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파보면, 더이상 그 행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세탁기에 우리가 들어가면 탈탈 털어지고, 깨끗이 빨아질 때까지 멈추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다 쏟아질때 까지 말입니다. 그 전에 주님께 엎드리는 것이 지혜로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갑시다. 세상의 더러움을 굳이 사랑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2. 남은 흔적을 덮어주시는 은혜는 예수뿐입니다.
세탁을 다 한 옷에도 얼룩이 남습니다. 얼룩은 흔적입니다. 깨끗해지기는 했는데, 흔적이 있습니다. 그 흔적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습니다. 덮어야 사라집니다. 무엇으로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성가대, 또는 장로교 전통으로 입게되는 목회자, 장로들의 성직복을 예로들어볼까요. 이 옷들을 왜 입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이 옷을 입으면 보다 거룩해보이기때문에 입는 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것도 틀린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다 본연의 의미를 살려서 설명해본다면, 우리는 죄인이기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함에 나아가는 것이 늘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주님의 거룩함으로 덮어달라는 일종의 회개와 겸손의 신앙고백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의미를 모르는 젊은이들은 모자가 달린 후드티를 입고 그 후드티를 성직복 밖으로 꺼냅니다. 우리의 허물을 가리운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벌이는 미성숙한 행동인 것이죠.
하지만, 결국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러한 옷을 아무리 입는다고 하여도 우리의 죄가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설명도 해주지 않고, 옷을 입히고, 그저 직분자는 당연히 입는 것인가 보다 하면, 그것은 직분자의 위엄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외식하는 행동일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 거룩함을 갖는 것은 외적인 행동이 아니라, 마음에 행하는 거룩함이라는 겁니다. 사실, 그래서 성직복을 입을 필요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히려, 성직복 보다, 자신의 신앙을 가진 진솔한 마음의 거룩함을 갖추는 것을 택해야 합니다. 그 마음의 표현으로 정결한 옷을 입고 주 앞에 서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가르침을 지켜가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다만, 이제 구약의 시대를 떠나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덮어주신다는 은혜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13-14]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우리의 힘으로는 씻을 수 없는 죄악의 흔적을 가리우기위해, 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진 흰 옷을 우리에게 입혀주신다는 겁니다. 죄악을 가려주시고, 죄악을 멀리 버리시며, 우리를 깨끗한 주님의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모습을 상상해보시죠.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 나를 위해 지신 십자가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 주님을 오늘도 나의 반복적인 죄악때문에 십자가 위에 못박는 삶이 아니길 바랍니다. 오직 주님을 거룩함으로 따라가는 복된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만나
나는 오늘도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행위는 없습니까? 주님의 보혈이 필요한 나의 모습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는 그 죄를 가까이 하지 않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말씀으로 :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깨끗하게 하심을 오늘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날마다 거룩하신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가정 / 교회 : 하나님 아버지, 진정한 사랑과 소망이 넘치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가치가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나라 / 세계 :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진노의 불길이 보입니다. 이 세상 가득한 죄악을 털어버리기 위하여서 주께서 털어내시는 세탁자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주여, 여전히 주님을 따르는 백성들을 기억하소서. 이들을 위해 그 강력한 손길을 감하여 주옵소서.
*오늘의 나눔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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