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찬송: 내 몸은 구주의 성전이니
제목: 약속을 기억하는 자리
본문: 시편 73:15-28
여러분,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 함께 기도로 하루를 열어갑시다.
- 하나님, 오늘도 주의 보혈로 저를 덮어주세요. 제가 주님의 긍휼함을 얻게 해주세요.
- 하나님, 제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세요. 제가 주님을 등지는 허튼 소리에 동참하지 않게 해주세요.
- 하나님, 저의 생각과 행동을 인도해주세요.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복된 자녀가 되게해주세요.
멕시코에서 ‘소음’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닌 듯 합니다. 늘 파티문화가 주말마다 펼쳐지는 이곳에서 소음은 오히려 분위기로 좋게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청년들이 와서 북적대어도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멕시코 문화가 그래서 좋죠. 기도는 어떻구요. 큰소리로 기도해도 옆에서 초인종 누르지 않으니 마음껏 기도할 수 있어서 이 또한 좋습니다.
이렇게 소음은 누군가 멈추기 위해서 항의하지 않으면, 또는 그 소음을 없애려는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소음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됩니다. 무슨말인가 하면요. 상대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이해해 주지 않으면, 소음은 상대에게 계속 들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만일 장소를 바꾸면 어떨까요? 소음이 났을때, 그 소리를 듣던 사람이 문을 열고 나간다면요? 그 소음의 자리를 벗어났기 때문에 소음이 줄어듭니다. 아주 없어지기란 쉽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소음에서 벗어날 수는 있습니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소리를 다른 소리로 덮어버리는 겁니다. 들리는 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덮게 되면, 원래의 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게 되죠.
오늘 시편기자의 신앙 고백을, 우리는 이 심정으로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1. 하나님의 성소로 나아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있는 시편의 기자, 시편을 적은 이 신앙의 선배와 같은 일은 누구에게든 찾아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은 미끄러지듯 내려가게 됩니다. 미끄러지면 교회에 발을 디디는 것이 괜히 싫어집니다. 예배드리는 삶이 귀찮아 집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왜 그런것 같은가요? 생각해보신적 있으신가요? 이건 ‘실망’을 겪은 인간이 보이는 모습입니다. 신뢰하던 그 대상으로 부터 실망을 겪게되면, 괜히 그 대상과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죠.
어제도 함께 나누었지만, 이 실망은 대개 우리가 가진 어떤 기대, 우리가 세워놓은 기준의 형통함이라는 모습과 실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의 차이로 인해 발생합니다. 나는 더 높은 임금을 원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상황을 보면서 슬퍼하게 됩니다.
물론 그것을 자신의 탓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실로 그렇게 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우리가 세상의 기준을 형통함으로 삼고 있는 이유 말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나요? 그건 우리의 모든 주변 환경이 세상의 형통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랩이라는 노래의 장르가 있는데요, 이 노래의 종류들로 서로 겨루는 대회들이 있더군요. 그런데, 그 장르에 나오려면, 사람들의 특징이 자신의 돈을 그렇게 자랑한다는 겁니다. 자신이 가진 차, 자신이 만나는 이성, 자신이 사는 집, 세상의 가치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자랑을 쏟아낸다는 거죠.
이렇게 세상의 소리가 우리를 압도하면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 소리에 집어삼켜진채 살아가는 겁니다. 그럼 우리의 인생의 목적, 그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목표 자체가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됩니다.
그때 중요한 포인트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성소로 들어가는 신앙입니다.
[시편 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성소에 들어간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누군가 물어보신다면, 다르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들리지 않습니다. 들려도 그 소리가 미약하기만 합니다. 세상의 소리는 크기만 합니다. 자신들이 잘났다고 하는 소리,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억누르고, 비웃고, 깔보고, 조롱하는 소리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 나아오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소리, 하나님께서 우리와같은 작은 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따뜻함,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구원의 선포,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우신다는 성령의 임재의 선포가 들립니다. 세상의 소리가 더이상 들려오지 않는 겁니다.
세상의 소리에 빠져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왜 주일이 중요할까요? 왜 주님의 전에 나아와 주님을 예배하는 성소의 신앙이 중요할까요? 그 신앙으로 우리는 세상의 소리를 지워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겁니다. 나의 존재가 귀하고 귀하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되기 때문입니다. 성소로 나아와 주님의 소리로 가득 채우십시오. 여러분은 채우는 세상의 소리를 지워냅시다. 그럼 하늘이 열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2. 여호와를 가까함이 복입니다.
누구를 가까이 하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죠. 검묵자흑(黔墨者黑)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려봅니다. 검은 것을 가까이하면 검어지죠. 그런데 빛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빛이 됩니다.
모세라는 인물 기억하시죠? 그가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나왔는데, 그의 얼굴이 해처럼 빛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기해하자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기까지 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자신을 돌로치는 사람들 앞에서 그의 얼굴은 천사와같이 변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세상은 하나님의 편에 서는가, 아니면 세상의 편에 서는가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하나님의 편에 서면, 하나님의 빛을 닮은 사람들이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편에 서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다른 기쁨이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읽어도, 기도를 해도 하나님을 이해하거나 믿는 것이나 느끼는 것이 어렵다고 하자, 무디 목사님이 그런 말을 하셨답니다. 나가서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해보고 와서 다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해보라고 말이죠.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신앙은 행동을 할때 진짜의 신앙이 됩니다.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진짜 행동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결단을 하십시오. 하나님만 가까이하는 신앙으로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를 가까이 함이 정녕 여러분에게 복이라고 여기십니까? 귀찮거나 힘들다고 여기진 않으신가요? 그럼 여러분은 지금 세상의 소리에 압도되신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더욱 하나님의 소리로 압도당할 시간입니다. 주님의 소리를 여러분의 삶의 곳곳에 두시고 보시고 들으십시오. 그럼 주님의 놀라우심이 여러분의 삶에 넘쳐날 줄 믿습니다.
*오늘의 만나
오늘 내 안에 세상의 소리가 크게 들리나요? 하나님의 소리가 크게 들리나요?
*오늘의 기도
말씀으로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오늘도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러기위해 세상의 소리를 압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로 삶을 가득 채우게 하옵소서.
가정 / 교회 :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에 세상의 소리가 울리지 않게 하소서. 세상의 소리를 압도하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소리가 우리에게 넘쳐나게 하소서. 주의 전을 밟기만 해도 성도들의 마음이 위로를 얻게 하옵소서.
나라 / 세계 : 하나님 아버지, 주를 대적하는 세상의 소리가 사라지게 하소서.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를 인정하는 소리가 세상에 넘쳐나게 하소서. 그러기 위해 오늘 작은 한사람인 내가, 작은 한 교회인 우리 교회가, 작은 한 나라인 대한민국이 그 초석이 되게 하소서.
*오늘의 나눔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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